팔공산 동화사를 종정스님의 주석사찰로 하여 3년간 안주하였으나, 1966년
구산이 동화사 주지를 사임함에 맞춰 밀양 표충사 서래각(西來閣)으로 주석처를
옮겼다. 효봉은 마지막까지도 무자화두를 놓지 않고 수행으로 일관하였다.
1966년 10월 15일 새벽 3시에 제자들에게 입적을 예고하고, 임종게를 내렸다.
그리고 오전 10시경 좌선자세 그대로 입적하였다. 입적게는 다음과 같다.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吾說一切法都是早騈拇)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 강에 비치리 (若問今日事月印於千江)47)
입적일은 마침 표충사의 사명대사 제향일이었는데, 효봉의 추모합동법회를 동
시에 거행하였다. 세수 79세, 법랍 42년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의견에 따라
종단장으로 7일장을 봉행한 후 10월 21일 화계사에서 다비식을 마쳤다.48) 다
비식 후 쇄신사리 55과, 전신사리 한 되를 수습했는데, 사리는 표충사의 진각보
탑, 송광사와 용화사, 미래사에 나눠 사리탑과 행장비를 건립하였다.
구산을 비롯한 효봉문도들은 스님의 유지에 따라 1969년 하안거 결제일에
조계총림을 개설하고, 현전승보 양성에 진력하기 시작하여 오늘 날의 송광사를
현창하기에 이른다.
49) 효봉이 가야총림 방장으로 추대될 당시 직접 기록한 약력 , (효봉법어집, p. 322.)
과 효봉법어집의 행장 , 불보함 , 송광사 비문 , 용화사 비문 , 미래사 비문 ,
표충사 비문 을 중심으로 하여, 김용덕, 효봉스님 이야기, [서울: 불일출판사. 증보
판, (초판,1992), 2008], 법정, 달이 일천강에 비치리: 曉峰禪師의 자취, (승주군:
불일출판사, 1990)의 자료를 종합하여 작성하였다.
효봉의 저서
효봉법어집의 성립
선종의 문헌은 내용과 성격에 따라 7가지, 즉 ① 어록, ② 전등사(傳燈史),
③ 공안집, ④ 청규, ⑤ 선문학류, ⑥ 좌선론, ⑦ 선문일화집으로 구분된다.51)
이 중 어록은 선승 개인의 행록(行錄)과 법어로 구성된 것으로, 상당(上堂), 보
설(普說), 시중(示衆), 대기(對機), 송고(頌古), 감변(勘辨)으로 분류하여 편집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서신 등을 더하면 특히 광록이라고 한다. 또 선승의 법
어를 시대순으로 편집하기도 한다. 효봉법어집은 위의 두 가지 방법을 종합한편집방식을 보여준다.
선어록의 대부분은 송대에 편찬된 문헌이다. 송대의 선불교는 신유교의 흥기
에 맞서 당대 선종의 영광을 계승하기 위해 선어록의 체계적 정리를 통해 선의
정신을 정비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고려 시대부터 선어록이 나타
나는데 ,특히 정통적인 선어록으로는 진각어록, 백운어록, 태고어록, 나
옹어록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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