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는 . 이 무렵 드쿠닝(De Kooning)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
하며 실질적으로 드쿠닝과 자신의 필치를 논하면서 서예적인 요소를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동양적인 서체를 응용한 프란츠 클라인의 작품을 논하면서 화면의 구
성적 입장으로 동양의 본질적인 운동인 생명의 표출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김보현의 1950년대 후반과 1960~61년의 초기 작품
들은 전반적으로 서예적인 제스처가 가지는 힘을 강조한 추상표현주의 특성을
지닌다. 로버트 C 모건은 김보현의 근본적인 작업에 대해 말하길 “문화적인 배
경 즉 뉴욕추상표현주의가 시작되기 2세기 전에 한반도 남서지역 무등산 죽림에
서 살았다는 조선시대 서화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평한다.242) 조선대학교와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1961년의「무제」(도판72. 도판73)시리즈는 서양의 브러쉬
(Brush)와 동양의 모필과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에도, 표현적인 서예적 붓놀림에
혼(魂)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Abstact 166b(d)>(도판74) 등은 화면의 구도보
다는 생명으로 표출되는 혼에 관심을 두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시, 서, 화 일
치라 하여 서와 화가 원리를 같이 하는 예술로 보아왔다. 따라서 서는 많은 회화
적 요소를 갖고 있기에 동양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어서 동양예술의 한 특질을
이루었다. 즉 동양인은 서를 통해서 선, 색채, 형태에 대한 근본적 개념을 체득했
으며 오직 동양에서 설립되고 발전을 한 고차원의 예술이다. 서는 방법적인 측면
에서 진실한 존재에 대한 실존적 표현으로 격렬한 동작과 시행의 속도감을 통하
여 자유와 도전이라는 확신으로 간주됐다. 따라서 모건은 김보현의 작품은 은연
중에 한국의 서화전통을 따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보현은 이보다 실질적인 경험을 들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모
필(毛筆)를 사용한 습자(習字, calligraphy)를 아주 잘했으며, 도화하고 습자는 학
교 대표로 뽑혀서 나갈 만큼 뛰어났다고”243) 설명한다. 또한 그는 “미국에 정착
한 시기의 뉴욕화단은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추상을 시도하였는데 상당히 어려운 표현방식에 부딪혔지만 어릴 때부터 손에
익혔던 서예의 필법을 통하여 예술적 기운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고”244)말한
242) 로버트 C. 모건,「반세기를 돌아온 선의 캔버스」,『월간미술』, 2009.8, p.129
243) 김허경,「작가 김보현과의 인터뷰」, (2011.5.22), 백양사에서
김보현은 이날 1951년 당시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했을 때
스케치를 갔던 전라북도 정읍시 약수리를 방문했다.
김보현이 미국으로 건너간 . 후 추상표현주의의 특성을 보여주는 격렬한 화면
은 한국에서 겪었던 내면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으며 작업을 하는 순간 몸과 마
음을 조화시키려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프리 웩슬러(Jeffrey Wechsler)는 김보현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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