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영혼불멸설은 비판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체를
나누고, 그중 전자만을 중시하던 플라톤은 이원론적 인간학에 근거해 있는 반면, 이
것과는 다르게 그 둘은 현실적인 삶 안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경험되기 때문
이다. 오히려 경험 안에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나눠지지 않으며, 통일체로서 세계
를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죽음 역시 통일체가 전부 죽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
대가 이해하는 죽음은 인간의 전체가 죽게 되는 ‘전적 죽음(Ganztod)’이 된다. 이러
한 전적 죽음 안에서 “죽음의 순간에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서의 인간 전체가 완
전히 죽어버린다.”52) 뿐만 아니라, 영혼불멸설이 초대기독교로부터 신학에게 끊임
없는 영향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현대 개신교신학 역시 영혼불멸설에 대항하여 전
적 죽음의 이론을 수용한다. 영혼불멸설은 삶의 경험뿐만 아니라 성서에도 맞지 않
으며, 특별히 개신교신학의 입장에서는 카톨릭 신학의 죽음이해에 대한 반동을 위
해 적극적으로 영혼불멸설을 거절하게 된다. “영혼불멸에 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의 가르침은 오늘날 로마 카톨릭 신학에서 아직도 대변되고 있으며”53), 따라
서 그것과 관련하여 개신교는 저항한다. 그리고 이 흐름은 ‘연옥설(Lehre vom
Purgatorium)’에 대한 반대로 대변된다.
연옥설은 개개인이 죽음 이후에 곧바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1336년 교황 베네
딕트 12세의 선언에 기인한다. 그의 주장은 죽음의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
신의 잘못을 다시 보게 되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죄의 결과 역시 계속적으로 남아
속죄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54) 죄는 죽음이전의 삶에서처럼 죽음 이
후의 삶에서도 정화되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연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55) 연옥설은 영혼불멸설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엄밀한 의미에
서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연옥은 성서에 나타나지 않음과 동시에 신학
적으로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인간의 죄를 대속했
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영혼이 참회를 위한 연옥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대 개신교신학은 이처럼 영혼불멸설과 연옥설을 비판하면서 전적 죽음을 이야
기한다. “제 1차 세계 이래로 전개되어 온 개신교 신학의 인간학적 청산의 과
정 속에서 사람들은 플라톤적 형태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영혼 불멸을 배척하고,
전적 죽음을 방어하면서, 영혼불멸이냐 육체의 부활이냐 하는 양자택일로부터 출발
했다!”56) 왜냐하면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과 육체는 분리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서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성서는 인간이 죽을 때, 그의 몸은 물론 그의 영
혼까지 전적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죽음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에도 관련되며, 양자
는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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